[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쟁과 실익
* 전용준. 리비젼컨설팅 대표. 경영학 박사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가가 뭐 그리 중요한 것인가라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용어 사용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고리타분한 학자들이나 할 일이고 비생산적인 '놀이'로 봐도 무방하며 실무적으로 어떤 용어를 쓰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엄밀한 용어 정립을 위한 논쟁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용어는 대상의 범위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다른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다른 대상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중반인 현재까지 한참 주목받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용어 논쟁의 결정판 격인 사례라 할 수 있어 보인다.
이 개념 내지는 용어는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학계, 정계, 산업계의 굵직한 인사들이 모이는 곳에서 이야기된 것이다보니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전파된 것은 사실이다. 초연결(hyper-connected), 초지능(hyper-intelligent)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전과는 다른 예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화가 온다는 이야기를 담은 4차 산업혁명은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라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에 특히 주목받고 있다.
논쟁의 촛점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의 논점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 정의가 모호하다.
- 학술적인 체계가 부족하다.
- 3차 산업혁명과 구별하기 어렵다.
- 전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다.
- 혁명이라기에는 급격한 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변화다.
물론 제레미 리프킨이 주창했던 '3차 산업혁명' 조차도 비판의 대상이다.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려면 생산성 증가가 나타나야하는데 3차 산업혁명의 주된 내용물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 등장이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수치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 발달로 자동화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고 있다.
정의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보니 학계나 연구소 등에서도 명확하게 개념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현실적으로 최대의 약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그 혁명이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몇년 후에는 온다는 것인지 조차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근래에 흔히 보게되는 웃지못할 모습 중 하나는 '4차 산업'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이다. 모 방송국에서는 이 축약 용어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4차 산업'이란 것은 이미 따로 존재하는 산업분류 중 하나를 지칭하는 이야기로 정보, 의료, 교육, 서비스 등의 지식 서비스 산업을 말한다. 4라는 숫자가 들어있다는 점 이외에는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개념들이다. 이와 같은 해프닝은 어쩌면 식당에서 소(작은 것)를 달라하니 소고기를 주는 것과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용어 정의의 허술함이 얼마나 큰 혼선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묘하게도 아시아권 국가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중 대표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단적으로 구글트렌드를 통해 용어가 사용되는 정도를 살펴보면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영문 명칭에 대한 검색량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한글 용어의 검색량이 2016년 10월경에 이미 넘어섰다. 2017년 6월 현재는 세 배 수준까지가 되었다. 전세계의 검색보다 훨씬 더 많은 량의 검색이 유독 한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벌어질만한 현상일까?
<그림: 구글트렌드: 4차산업혁명 Vs.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
2015.7.1~2017.6.16. 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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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시아권 국가간 4차 산업혁명 용어 사용 현황 비교
(4차산업혁명,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第4次産業革命, 第四次工业革命)
- 구글검색량 : 한국 100 > 일본 10 > 중국 2 -- 일본 중국은 검색이 증가하지 않는 패턴
- 구글문서수 : 일본 6800K ; 중국 2380K ; 한국 765K -- 관심이 많으나 설명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 --> 혼란만 증가
- 구글뉴스수 : 일본 71K ; 중국 161K ; 506K -- 찾아볼만한 설명도 없음에도 뉴스에서는 무조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추가해 놓고 있음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4차 산업혁명이 표준이 되어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하반기부터였다. 2016년 초반 다보스포럼 기간에 일시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그 이후 수개월간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하반기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급격하게 표준 용어로 떠올랐다. 미디어에서 너도 나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공공기관들의 정책과 발표 자료들에 단골로 등장했다.
2017년에 들어서도 대선관련 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방안이라는 내용이 후보를 막론하고 중요한 항목들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왜 하필 이 용어로 단일화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누구나 사용하다보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표준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은 표준 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이를 기준으로 조직이 만들어지고 정책이 설계되고 있다. 이 기조가 이어진다면 향후 일정기간 동안은 현재보다도 더 많이 이 용어가 사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용어를 쓰는 것에 장점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미 일반인들을 포함한 모두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보니 다른 용어를 추가로 보태거나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쉽게 소통이 된다. 이는 매우 큰 장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유일한 장점이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큰 장점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의부터가 모호한데다 국제적으로도 많이 통용되지 않는 개념을 그렇다고 우리 자체로도 명확하게 개념정의를 내리지 못한 것을 표준용어로 여기고 공식적으로 정책이나 국가 조직의 명칭에까지 계속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국내외에 적극 자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그 결과로 범위와 방향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정부 사업들이 우후죽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핑계삼아 생겨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된다. 문제 자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해답도 대응방안도 제대로 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은 딱 두 가지가 가능해 보인다. 하나의 방법은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 명확하고 구체적인 개념정리를 지금이라도 정부기관 주도로 독자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기준 삼아서 가는 것이다. 교과서든 정부보고서든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문제는 최소화될 것이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은 작업이라고 보이기는 한다.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일년여의 기간동안 용어를 가지고 논쟁만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지금이라도 이 용어를 버리고 조금 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용어를 변경하는 것이다. 꼭 미국을 따라서가 아니라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디지털 전환'은 좋은 후보로 보인다.
이 논쟁을 마치고 결론을 내려면 학계와 미디어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가 사용하고 있기에 그 용어를 그대로 미디어가 사용한다면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학계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좋은 대안과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면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은 사항이다.
2017. 6. 16 (Update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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